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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영웅인가? 내란죄인인가? 프로필, 가족관계

 

- 박정희 시대의 왜곡되고 편집된 역사는 반드시 진실을 토대로 재평가되어야

-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하지 않았다면 흘러갔을 역사를 생각해 보자

 

 

 

197910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가 사망한지 37주년이다. 그의 사형은 1980524일 집행되었다. 당시에도 재야 일부 세력은 그를 옹호하기도 하였고, 최근 박정희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에 신물을 느낀 이 시대의 일부 사람들이 김재규를 열사로 칭하며 그에 대한 평가를 다시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김재규 묘소를 찾아 참배한다는 소식도 종종 들릴 정도이니 시대가 바뀌긴 한 모양이다.

보수정권의 시퍼런 칼날 아래에서 이런 목소리를 냈다가는 어떤 불이익이 돌아 올까 노심초사해야 하니 말이다. 보편타당한 정의와 원칙보다는 억압과 탄압 속에 승리자의 역사를 만들었던 우리의 현대사, 거짓인지도 모를 역사를 어려서부터 읽고 배우는 우리의 후손, 자식들은 우리가 그토록 비판하는 북한의 세뇌교육과 비단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김재규는 서슬퍼런 중정(중앙정보부, 현 국가정보원)의 부장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박정희를 보좌하여 수많은 정치공장과 반대세력 탄압을 일삼았다. 이로서 그는 대역죄인, 패륜아 등의 평가가 따르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당시 재야 변호사들은 이런 김재규의 구명운동을 나섰다. 시해한 동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정치적 결집의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김재규는 그의 가족들이 선임한 사선 변호인단을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본인은 소신을 가지고 민주회복 국민혁명을 했는데 본 재판을 사선 변호인단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본인의 숭고한 뜻이 퇴색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하여 국선변호인이 그의 변호를 맡았는데 김재규는 국선변호인에게 박정희 암살에 연루된 부하의 무죄를 위해 열심히 변론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결국 10.26에 가담한 김재규의 부하 다섯명 모두 사형당했다.

 

 

 

 

 

김재규가 밝힌 박정희 암살 동기는 다음과 같다. 유신정권의 막을 내리려면 박정희를 제거하는 방법 이외엔 없고 이를 실행하면 국민의 지지가 동반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합수부가 밝힌 그의 범행동기는 달랐다. 중정부장으로서 정국 수습책의 거듭된 실패로 박정희에게 질책을 당하고 있었고, 후배인 경호실장 차지철의 부상 등에 불만을 품고 우발적인 범행을 했다는 발표를 했다.

재판중 그는 10.26의 목적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회복, 국민의 희생방지, 독재국가 이미지 탈피를 일관되게 주장했다.

대법원 판사 중 6명이 반대의견을 냈는데 그 이유는 내란죄가 성립되지 않고 단순살인이라고 판단한 이유에서이다. 언론은 통제되어 반대의견은 보도되지 않았고, 반대의견을 낸 판사 6명은 얼마 안되어 강퇴퇴임하였다. 김재규를 변호했던 국선변호사 역시 당시 보안사의 탄압을 받았다.

박정희가 김재규의 손에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느 쪽으로 흘러 갔을까? 얼마의 피를 흘려 민주주의를 성취했을까?

 

김재규 프로필

김재규는 1926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박정희의 고향후배로 연결되었고, 육사 2기 박정희와 동기였다.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보안사, 3군단장, 국회의원 등 요직을 거쳐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된다.

 

김재규 가족관계

그의 아내 김영희는 김재규의 사형 이후 재산이 몰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력가로 생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녀 김수진은 사립대학 총장의 부인이다. 내연녀도 있었는데 내연녀와의 사이에서 아들 둘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유튜브에 있는 그의 최후진술을 링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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